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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E. 로렌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포스터. |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이기도 한 T. E. 로렌스는 터키의 압제로부터 아랍 민족에게 독립을 안겨준 멋진 사나이였다. 16세기부터 터키 지배에 놓이게 된 아라비아인들은 터키군 말발굽 아래 신음해 왔다. 독립을 위한 몇 번의 항쟁이 잔혹한 진압으로 수포로 돌아가면서 그들의 문화와 재산은 파괴당하거나 약탈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과 동맹을 맺은 터키는 아라비아의 문자까지 말살하는 강압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아랍 부족들이 독립의 횃불을 높이 들게 됐다. 터키라는 공동의 적 앞에 영국과 아랍부족은 손을 잡는다. 동맹의 이음줄로 로렌스는 파이잘이 이끄는 아랍족의 군대로 파견됐다. 그는 독특한 전략을 구사한다.
“이 전략은 적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효과가 좋다. 당신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거대한 적은 당신에게는 먹음직한 표적이다. 적에게 정신적 혼란을 최대한 안겨주고 싶다면 작지만 가차없는 공격으로 상대에게 좌절감과 분노를 심어줘야 한다. 완벽하게 텅 빈 존재가 돼라. 성과 없는 협상, 결론 없는 담화, 승리도 패배도 없이 한없이 흘러가는 시간. 한시도 쉼 없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전략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공격할 목표가 없으면 없을수록, 상대는 더욱 맥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전쟁이란 대개 두 개의 세력이 서로 만나기 위해 분투하는 접촉의 전쟁이다. (중략) 아랍전은 분리의 전쟁이다. 광활하고 끝없는 사막의 침묵으로 위협하고 공격의 순간이 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마라. (중략) 이 이론은 적과 교전하지 않는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발전한다. 이는 또한 적에게 결코 목표를 제공하지 말라는 많은 이들의 충고와도 일치한다.” - T. E. 로렌스, 《지혜의 일곱 기둥(The Seven Pillars of Wisdom, 1926년)》
로렌스는 오합지졸이었던 아랍부족을 이끌고 게릴라 작전을 벌였다. 보급기지를 습격해 터키군에 타격을 줬다. 철로를 차단해 증원군이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황야와 사막으로 이뤄진 중동지역은 십자군과 나폴레옹에게 날씨로 참패를 안겨준 곳이다. 이글거리는 한낮의 태양과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밤의 추위 속에서 때론 부하들을 비참하게 잃기도 했지만, 로렌스는 연전연승했다. 터키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기 위해 로렌스는 모세 이후 누구도 건너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죽음의 사막인 네퓨드 사막을 통해 아카바를 점령하기로 한다.
“한낮에는 50도를 웃도는 폭염, 밤에는 뼈까지 스며드는 사막의 추위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마치 밤처럼 느껴질 정도의 시커먼 모래바람은 행군은 커녕 눈조차 뜰 수 없게 만들었다. 타필라 지역에서의 혹한과 쌓인 눈과 강한 바람, 생명이라곤 하나도 없는 황폐한 땅으로의 행군 등은 모두 날씨와 내 의지의 싸움이었다.”
극한 날씨를 이겨 낸 2개월간의 행군 뒤 1917년 7월 6일 홍해의 북쪽 끝에 있는 아카바를 점령했다. 터키에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 준 것이다. 이후 열사병과 장티푸스 등으로 죽음과 싸우면서도 초인적인 의지로 아라비아 부족을 이끌고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다. 예루살렘 탈환작전에 이어 1918년 9월 다마스쿠스를 점령함으로써 결국 최후의 승리를 차지한다.
역사를 보면 날씨를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한 군인은 명장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한니발과 나폴레옹은 혹한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칭기즈칸은 러시아의 진창과 혹한을 이겼다. 알렉산더는 황야와 사막과 우림을 이겨냈다. 비록 위관장교였지만 극한의 날씨를 이기고 승리한 로렌스도 위대한 명장의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의 병사들이 날씨를 이겨낸 힘은 무엇이었을까? 로렌스는 이기적이었던 아랍족장들을 독립이라는 이상에 헌신하게 했다. 적의 노획물을 공평히 나누었다. 아랍민족과 언어와 의상, 마음에서 일심동체의 생활을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동작전으로 터키군에 타격을 줌으로써 전폭적인 신뢰를 얻었다. 살인 사건으로 아랍부족 연합이 깨질 위기에 놓이자 자기가 사랑하는 몸종을 친히 사형을 집행하는 읍참마속을 통해 공정한 리더라는 인식을 줬다. 사막에서 낙오한 아랍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 사막으로 되돌아간 그의 행동은 아랍인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이 그와 병사들이 극한 사막과 황야를 건너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1918년 영국의 조지 5세는 로렌스에게 친히 기사 작위인 바스 훈위와 수훈장을 주고자 했다. 로렌스는 정중히 사양했다. 모든 정치·경제적인 보상을 정중히 거절한 채 명예롭게 물러났다. 자유를 사랑하던 로렌스는 “구하는 자만이 구할 것이요, 찾는 자만이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구해야 할 것이 무언가를 알았고 또 얻었던 로렌스는 20세기 진정 위대한 사나이였다.
[Tip]비정형전술 이론을 발전시킨 로렌스-사막에 아랍군 분산 배치…치고 빠지는 우회전술 구사
게릴라전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 이론을 발전시키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 최초의 현대 전략가는 T. E. 로렌스(Lawrence)다. 로렌스는 아랍 편에 서서 터키와 싸웠다. 그는 아랍군을 광대한 사막에 분산시켜 적에게 어떤 목표물도 허용하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는 군대와 싸우기 위해 터키군은 얇게 포진하고 이동하느라 힘을 소모했다.
터키군의 화력이 월등했지만, 이 전쟁에서 주도권을 쥔 것은 아랍군이었고 터키군의 사기는 갈수록 떨어졌다.“대부분의 전쟁은 접전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우리는 분산돼 적을 상대해야 한다. 광대한 사막의 적막한 공포로 적을 에워싸고 공격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로렌스는 말했다. 이것이 전략의 궁극적인 형태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하면 교전은 너무 위험할뿐더러 희생 또한 크다. 반면 치고 빠지는 우회전은 더 효과적이고 희생도 훨씬 적다. 적을 교란시키는 데는 비정형적인 전술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의 전략은 중국의 마오쩌둥에게 영향을 미쳤고 중국의 공산화에도 일조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이 벌이는 전술도 이와 비슷하다.
<국방일보 2011.5.12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