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 취재 중 타자기를 이용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출처:War In Korea)] 전쟁과 여자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남성들만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는 한반도에서 전쟁과 여자는 그리 큰 연관성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굳이 생각의 나래를 넓혀보자면 전쟁의 참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연약한 여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는 아들들을 전장에 떠나보내고 하루 하루를 슬픔에 잠겨 지내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 정도일까. 전쟁과 기자는 또 어떤가. 전쟁을 치르는 병사들 사이로, 총이 아닌 펜을 잡고 분주히 오가는 모습. 오직 진실을 전하기 위해 지옥 같은 전쟁터에 뛰어든, 이해하기 힘든 직업정신(?) 혹은 포성이 들리지 않는 편한 후방에서, 목숨 걸고 뛰는 병사들의 뒷덜미나 잡기 위해 이리 저리 헤집고 다니는 하이에나(?) [미군 병사가 부상병을 내려놓으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이 병사는 부상당한 동료를 업고 전선에서 대전 인근까지 2,000야드를 내려왔다.(출처 : War In Korea)] [한 미군이 전투중 부상당한 전우를 치료하고 있다(출처 : War In Korea)] 물론 전쟁 기간을 통틀어 그녀가 유일한 여성 종군 기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6ㆍ25전쟁에 대해 가진 각별한 감정은 그녀를 다른 기자들보다 돋보이게 한다. 그녀는 전쟁에 대한 경험을 담아 1951년 전쟁 비망록(War In Korea)을 출간했고, 이 책으로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녀는 종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내보이며 미국의 참전을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6·25전쟁 비망록 'War In Korea' 표지(출처 : War In Korea)] [전장으로 향하는 미 육군 24보병사단 장병들. (출처 : War In Korea)] 유명했던 우리 해병대의 마산 진동리와 통영 전투를 취재하고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애칭을 붙였던 이가 바로 히긴스이기도 하다. 물론 시점 상으로는 UPI통신의 기사가 이 표현을 조금 더 일찍 사용했다는 게 맞는 듯하지만 그녀의 기사가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한국 해병대의 명성을 널리 알리게 했다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그녀는 1951년에 쓴 비망록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한반도에서 우리는 준비하지 않은 전쟁을 치름으로써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또 승리는 많은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할 때 치러야 할 비용보다 훨씬 저렴할 것이다.”“누구도 나더러 참호로 들어오라고 유혹하진 않았다구요”
2010/02/08 10:31 |
사실 전쟁과 여자 또는 전쟁과 기자, 나아가 모든 세상 일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은, 말 그대로 느낌일 뿐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나 밖에서 주어진 얄팍한 지식에 기대 그 복잡한 세상일을 쉽게 재단하려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면, 요즘 유행하는 개그 프로의 대사처럼 ‘~하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마!’다. 특히나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1950년 시작된 6ㆍ25 전쟁에 뛰어든 것은 비단 수 많은 장병들만은 아니었다. 이 땅에 살았던 모든 국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맡은 일 때문에 전쟁터를 기꺼이 찾아온 이들도 많았다. 종군(從軍) 기자들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많은 종군 기자들 중 여성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여성 종군 기자로 전쟁을 누구보다 직접 경험한 이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은 그런 면에서 적지 않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전쟁의 포성이 들려오지 않은, 21세기에 이른 지금의 관점으로는 낯선 광경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종군 기자라고 했다. 미국인이다. 이름은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다. 1950년 6월 27일, 전쟁 발발 이틀 만에 김포에 도착해 12월까지 6개월 동안 미군과 함께 전장을 누볐다. 그녀는 어쩌다 낯선 한반도에 발을 디디게 됐을까.
히긴스는 1920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었다. 1920년대 중반 미국으로 간 히긴스 가족은 히긴스를 스타 발레리나, 일류 바이올리니스트, 저명한 학자, 최고의 언론인으로 키운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런 꿈에 따라 히긴스를 명문 사립학교와 대학, 대학원에 진학시킨 부모의 모든 꿈이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그 중 하나는 이뤄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1942년 뉴욕헤럴드트리뷴의 기자로 입사한 그녀는 1944년부터 런던특파원으로 일했고, 1947년부터 독일 베를린 지국장으로 근무하다 6ㆍ25전쟁 발발 한 달 전 일본 도쿄의 극동지국장으로 부임했다. 미국의 관심이 극동에 많지 않았던 탓에 소위 ‘좌천’을 당했다고 여겼으나 곧 이은 전쟁 발발로 그녀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녀 나이 서른 살이었다.
그녀는 전쟁 초기 서울에 들어갔다가 한강 인도교가 폭파돼 퇴각하지 못한 채 위험천만한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불안한 상황 탓에 옷을 전부 차려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한밤 중 뛰처나와 퇴각하는 등 미군들과 수 많은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여성으로서 겪었던 차별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아가씨, 여기는 당신 같은 여자가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미 육군 대령의 차가운 대접에 히긴스는 지지 않았다. “위험하지 않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위험한 사태가 뉴스이며, 뉴스를 수집하는 것이 나의 일입니다.” 전선에 여성 편의시설(화장실)이 없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추방당할 뻔한 일도 겪었다. 여성 종군 기자들이 흔하게 받았던 오해-매력적인 미소로 특종 기사를 얻는다-는 그녀도 피해가지 않았다. 이에 대한 그녀의 유머러스한 반응은 재미있다. “여기자가 지프를 타고 병사들을 지나가면 휘파람 소리가 들리지만 포탄이 터지기 시작하면 아무도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누구도 나에게 그들의 참호로 들어오라고 제안한 적이 없다.” (War In Koreaㆍ국내 출판명 ‘자유를 위한 희생’ 중)
이방인이었던 그녀가 한국군에 대해 느꼈던 감정은 한번쯤 되새겨볼 만하다. 히긴스는 비망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한국군 10만여명의 병력은 2만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많은 한국군 장병은 옷을 갈아입고 민간인으로 변신해 남쪽으로 향하는 피란민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늦여름쯤에는 한국군 규모가 15만명 이상으로 증원됐다. 이후 미군 장교들은 한국군 장병들이 포화 속에서 보여 준 용기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무기가 부족했던 한국군의 전투 환경은 극도로 열악했지만 미국의 장비를 공급받은 후 적의 사격을 받으면서도 지뢰가 매설된 8마일이나 되는 길을 확보한 ‘덩치가 작은 한국군 병사들’을 향해 미군 병사들은 입 안의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고 한다.
미군 장병들로부터 ‘드레스보다 군복이 더 어울리는 여자’, ‘화장품 대신 진흙을 바른 여자’라는 평을 들었던 히긴스는 이후에도 여러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열정을 보이다 베트남전 취재 도중 풍토병을 얻어 1966년 워싱턴의 미 육군병원에서 마흔다섯의 삶을 극적으로 마감했다. 미국 정부는 종군 기자로서의 그녀의 업적을 기려 그녀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이렇게 머나먼 미국 땅에 묻혀 있는 한 여성의 삶조차도 우리나라가 겪었던 전쟁과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 있다. 6ㆍ25전쟁이 쉽게 잊혀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2010.06.20 09:16
여성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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