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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월요인터뷰 > 6 · 25 기습남침을 단행한 북한군이 서울을 무너뜨리고 낙동강까지 진격하는 데 걸린 기간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낙동강 부근 다부동마저 밀리면 대구와 부산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적이 고지를 넘어 진격해 오자 백선엽 당시 1사단장은 권총을 빼들고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는 말을 남기고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7600여명의 병사가 3만명이 넘는 적을 무찌르고 전세를 뒤집어 놓은 순간이었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429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사무실로 백선엽 장군을 찾았다. 1920년생,우리 나이로 92세의 고령임에도 그는 61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풀어냈다. 숫자나 날짜,장소,사람 이름에서 막힘이 없었다.

"건강 비결요? 허허.술 · 담배 안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거지요. 술 마시면 머리가 흐려지고 실수하게 마련이죠.오전 5시에 일어나 8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하고….규칙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요. "

"어이 빨리 차 한잔 내오게"라며 쩌렁한 목소리로 손님 대접을 재촉하는 백 장군의 기개는 29세에 1사단장을 맡으며 낙동강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그때 그대로였다. 그러나 현안에 대한 질문에는 "정부나 현재 일하시는 분들이 잘하겠지요"라며 에둘러 즉답을 피했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운동은 하시나요. 특별히 챙겨드시는 음식이 있습니까.

"나이가 있으니 운동은 못하고요. 특별한 음식이라….허허.그런 거 없고 지금도 밥은 15분 안에 먹어요. 전쟁 때 하도 습관이 돼놔서.건강해 보인다면 지금도 계속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 (그는 지금도 대한민국육군협회 회장,한군전쟁기념재단 이사장,유엔봉사단 총재 등 세 개의 직함을 갖고 있으며 종종 관련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백 장군께서는 '6 · 25 전쟁 영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는 뭡니까.


"다부동 전투입니다. 1950년 8월 우리군은 북한에 밀려 낙동강 이남만 남아 있던 상태였습니다. 북한군은 다부동만 뚫는다면 대구와 부산을 한꺼번에 점령하면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죠.북한은 인민군 3만~4만명을 다부동 일대에 집중적으로 배치해 대구와 부산을 노렸습니다. 이때 우리는 한국군 1사단과 미군 2개 연대가 연합해 8000여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

▼절체절명의 상황이었군요.

"거기서 3주를 싸웠어요. 치열하고 참혹했죠.하루에 약 700명씩 녹아났고요. (그는 죽거나 패했다는 것을 녹았다고 표현했다) 저를 비롯한 우리 장병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습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전투에서 승리하자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졌고,이를 발판 삼아 평양으로 진격할 수 있었죠."

▼당시 평양에 맨 먼저 입성했는데,소감이 남달랐겠습니다.

"다부동 전투 이후 미 1군단의 프랭크 밀번 장군은 북진을 시작하며 평양에 진격하는 공격로 두 개 중 하나를 제게 맡겼습니다. 우리 부대는 밤낮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평양은 내 고향이라서 지리도 잘 알았죠.자신감도 있었고.결국 다른 한 개의 공격로에 올라섰던 미 1기병사단이 낙동강에서 먼저 진군했지만,우리 1사단이 평양을 먼저 점령할 수 있었죠.평생 잊을 수 없는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평양을 점령한 기세로 평안북도 운산까지 밀고 올라갔습니다. 우선 그곳에 머물다가 압록강,두만강까지 진출하려 했죠.그런데 그곳에서 북쪽으로 한 20㎞ 떨어진 북진이라는 곳에 중공의 100만 대군이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중공군의 존재 자체를 몰랐어요. 포로 한 명을 잡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

▼중공군이 움직이는데 왜 몰랐습니까.

"중공군이 연막을 쳤죠.산 일대에 불을 질러서 일대를 연기로 자욱하게 만들었어요. 미군이 폭격할까 봐 낮에는 연기를 내고 밤에만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군 6사단이 중공군 근처에 갔다가 매복에 걸려서 다 녹았습니다. 저도 압록강까지 갔으면 혼났을 거예요. 운산에서 운 좋게 살아난 셈이죠."

20110605184306584.jpg▼당시 중공군은 얼마나 됐나요.

"중공군이 인천상륙작전 한 달 전부터 병사를 동원해 선양에서 100만명이 대기하고 있었어요. 이들이 안동 순풍 만포진 중강진에서 도강해 산맥에 숨어 있다가 내려온 거죠.미군은 그때 4개 사단이 있었는데 그중 1개 사단이 다 녹았습니다. 한국군도 3개 사단이 패했고,우리 1사단만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

▼퇴임 이후에도 국가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내 나이 마흔하나,그러니까 1960년 합참의장 때 군복을 벗었어요. 그 뒤 외교관으로서 대만,프랑스,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대사를 역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미약하던 시절에 유럽 국가 및 아프리카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맺는 데 일조를 했습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선 교통부 장관으로 지하철도 만들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엔 한국종합화학 사장으로 비료공장도 만들고….나라가 부르는 일엔 언제나 온 힘을 다해 응했습니다. "

▼지난해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때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북한은 휴전 후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김신조 사건,대한항공 폭발사건,아웅산 폭탄테러 등 100건도 넘게 휴전 협정을 위반했습니다. 최근엔 현저하게 그런 빈도가 더 높아지고 있을 뿐이죠.북한 인구가 2200여만명인데 그중 120만명이 군인입니다. 또 그중 20만명은 특공대고요. 그들은 언제든지 쳐들어오려고 우리를 넘보고 있습니다. 그걸 잊어선 안 됩니다. "

▼천안함 사태 때 야당이나 일부에서 자작극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 우리 쪽(남한)에서는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늘 은인자중했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친북세력과 연계 플레이를 합니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가 뭉쳐야 하지요. "

▼북한의 도발에 정부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천만에요. 우리 대응은 미흡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언제든 북에 당할 수밖에 없죠.우린 항상 은인자중했어요. "(그는 대북관계에서 우리 정부가 항상 참고 인내해왔다는 것을 '은인자중'으로 표현하며 여러 차례 강조했다)

▼천안함 · 연평도 사태 이후 젊은이들까지 안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추세입니다.

"안보에 여야나 남녀노소가 있을 수 있나요. 온 국민이 합심해서 대응해야 합니다. "

▼현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요구하며 강경 구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가 국지적 도발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통일을 원합니다. 그 사람들(북한)이 자꾸 그러면 우리도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현충일을 맞아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뭡니까.

"중요한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입니다. 6 · 25 전쟁도 미국이 돕지 않았으면 질 뻔 했어요. 그때 미국이 군비,군수물자의 80%를 댔고 40만명을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한 · 미동맹이 그 이후에도 유지돼 오늘날 장기간 동안 전쟁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던 것 아니겠어요. 항상 준비 있는 사람은 편안히 잠잘 수 있고,준비 없는 사람은 절대로 안 됩니다. 내 평생을 군과 국가에 헌신했다는 데 후회는 없어요. 나라를 위해서 긍지를 갖고 했습니다. 나라 없는 군이 없고,나라 없는 백성도 없습니다. "

[ 백선엽 장군은 ]

새로 취임하는 주한 미군 사령관은 항상 취임식장에서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이라는 말로 인사를 시작하는 전통이 있다. 또 미군 장성 진급자들이 반드시 수료해야 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코스에 '백 장군 만나기'가 포함돼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백 장군이 고령임을 감안,지난해부터 중단됐다. )

1941년 말 만주군관학교 졸업 후 만주국 장교로 복무하다 해방 후 국군 창설을 주도했다. 1952년 4월 제2군단장을 거쳐 같은 해 7월 만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려준 인연도 유명하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재직했던 그는 남로당 군사부 총책으로 잡혀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박 전 대통령(당시 소령)을 면담한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도록 손을 썼다.

박수진/김우섭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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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병이 2011.08.02 13:53

    6.25전쟁당시 훌륭한 전투지휘관으로서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마는...

     

    위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만주군관학교출신으로(만주국은 일본이 중국침략의 구실로 세운 괴뢰정부다) 만주국 장교는 일본군 장교이다. 일제시대 우리아버지도 징병으로 끌려가셨다가 정말 운좋게 살아돌아오셨지만(물론 장교도 아니고, 하사관도 아닌 병이었음).

    일제시대 장교는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 입대한 경우이다.

    결국 일본국 장교로 자원입대해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신 독립군들을 잡으러 다녔다는 이야기이다...

     

    아무꺼리낌 없이 만주국 장교로 복무하였다는 글을 올리는 것이 용기가 있어서 인지, 아님 몰라서 올린것인지...

    올리신 기자께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는 것으로 알아듯겠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쪽바리들의 장교로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시는 독립군들을 잡으러 다니시던 분꼐서, 해방이 되자 언제 그랬냐고 하루아침에 해방조국의 장교가 된다???

    유럽의 여러나라들 같았으면 3족이 멸할 일 입니다.

    아직도 저렇게 꺼리낌 없이 해방조국을 논하다니 대단히 훌륭하신 분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또 다시 어떤분들이 빨갱이 라고 댓글을 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국을 팔아먹던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써먹던 수법이 자신들의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던 그 수법을

    작금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써 먹고 있습니다.

    192~30년 경 냉전시대에 미국의 우익 국회의원이였던 매카시 의원이라는 사람이 써 먹던 수법입니다.

    매카시의원은 노회한 우파정치인으로서 자신들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하여 정적들에게 무조건 빨갱이 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히며

    몰아 부쳐서 자신들의 살길을 찾았다 하더군요....

     

  • 티엔티해병 2011.08.02 14:24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좀 씁쓸하네요.

    해병대의 장군들중에도 이러한 일들로 거론된 분이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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