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헌터<반점무늬의 위장복>, 태평양 전선의 美 해병대가 주로 사용 / 2011.08.08 국방일보
덕 헌터 위장복을 입은 유럽 전선의 미군 병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위장복 채용에 적극적이었다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카키색 전투복을 채용하는 등 위장이라는 개념 자체에 무관심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듯이 위장효과가 고려된 단색 전투복이면 충분하다는 입장이었으며 위장무늬 복장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미국도 1930년대 말엽에 이탈리아와 독일 등에서 진행되던 위장무늬 복장과 개인장비의 추세를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1940년에는 미 육군 공병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위장에 대한 연구개발이 시작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개인 위장뿐만 아니라 장비ㆍ시설 등 다양한 범주를 아우르고 있었으며 위장무늬 전투복에 대해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42년에 상황이 바뀌었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전쟁에 참가하면서 태평양 전선에도 대규모의 미군 병력이 파견돼야 했고, 이곳의 정글 환경에 알맞은 위장복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맥아더 장군의 요구에 의해 15만 벌의 위장복이 주문됐기 때문이다.
1940년부터의 연구 결과가 반영돼 만들어진 새로운 위장복은 원피스 방식으로, ‘오리 사냥꾼(Duck Hunter)’이나 ‘개구리 가죽’ ‘표범 무늬’ 등으로 불렸다. 수많은 불규칙한 반점으로 구성된 이 위장복이 비슷한 동물 가죽을 떠올리는 이름으로 불린 것이야 그렇다 쳐도, ‘오리 사냥꾼’은 좀 뜻밖이다.
이것은 초기에 원피스였던 이 옷을 입고 나면 당시의 오리 사냥꾼들이 즐겨 입던 복장과 흡사해졌기 때문인데, 특히 오리 사냥꾼들은 위장무늬 복장은 없을지언정 개인 위장에 군인들보다 먼저 신경을 썼던 점도 이런 이름을 붙이게 하는 이유가 됐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위장무늬는 미국의 민간 시장에서 실제로 오리 사냥꾼들을 위한 복장에 채택되기도 했다)
원래는 원피스였던 이 위장복은 곧 일반 전투복처럼 상하의가 분리된 방식이 되며 독일의 사례를 본받아 리버서블, 즉 앞뒤를 뒤집어 입는 방식이 됐다.
한 면은 모래 색에 가까운 해안지대용, 또 다른 면은 녹색 계통의 정글용이었다. 상륙 후 정글로 진입하는 태평양 도서지역에서의 전투 행태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위장무늬가 이동 중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결국 1944년에 생산이 중단된다.
사용은 태평양 전선의 미 해병대에 의해 주로 이뤄졌으나, 생산 중단 이후에는 단색 전투복의 사용이 재개된다. 그러나 같은 해병대라도 수색대 등 일부 특수전 병력은 1950년대까지 사용을 계속한다.
태평양 전선에서 주로 사용된 덕 헌터 위장복이지만, 유럽 전선에서도 사용된 사례가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미 제2 기갑사단 휘하의 병력에게 지급된 것이다. 노르망디는 관목과 삼림이 많은 곳이어서 위장복의 효과가 높으리라고 기대한 것이다. 위장효과 자체에는 나름대로 평가를 받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독일군의 무장 친위대도 무수한 반점으로 이뤄진 위장복을 사용했으며 이로 인해 좀 떨어져 보면 위장복을 입은 미군 병사를 독일군으로 착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군끼리 오인 사격을 당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했으며, 결국 이것으로 인해 유럽 전선에서 덕 헌터 위장복은 단기간에 사용이 중지되고 만다.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