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4 09:19

기뢰전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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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상륙전 敵 기뢰 4000발로 사실상 무산 / 국방일보 2011.11.14 김병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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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원산 소해전 당시 소련제 기뢰가 아군 소해정에 접촉해 폭발하고 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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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식 기뢰.

기뢰의 폭발력으로 구축함 전방의 방수 소화 격실은 완전히 파괴됐다. 직경 40피트(12.192m)의 큰 구멍이 났고, 전방 소화방수 격실에 있던 승조원 5명은 사라져 버렸다. 사상자는 모두 11명. 태풍이 끝난 뒤 해안에서 먼 바다까지 떠내려 온 북한군의 부유 기뢰에 미 해군의 구축함이 당한 것이다.

 당시 바톤함은 항공모함이 포함된 77기동부대를 엄호하기 위해 외곽에서 경계를 하면서 시속 15노트(시속 27.78km)로 기동 중이었다. 마침 기뢰에 접촉하기 직전 바톤함의 함장인 세임 중령은 부유기뢰 대응법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10노트 이상 속도로 항해하면 배의 앞에 파도가 부딪치면서 생기는 소용돌이인 와류가 바다에 떠다니는 부유 기뢰를 밀어낼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15노트의 항해 속도에서도 부유 기뢰는 선체에 접촉했고,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 처절한 사투

 바톤함의 기뢰 접촉 사례는 6ㆍ25전쟁 당시 미 해군과 한국 해군이 적의 기뢰를 상대로 벌였던 처절한 사투의 한 토막을 보여준다. 6ㆍ25전쟁 당시 미 해군은 항공모함부터 전함ㆍ순양함ㆍ구축함을 망라한 압도적인 전력으로 손쉽게 제해권을 장악했다.

 전쟁 중 38선 남쪽 지역은 물론이고, 38선 북쪽의 북한 해역도 북한의 바다가 아닌 ‘우리의 바다’였다. 육지에서 격전을 치르며 오르락내리락 전선이 이동할 때에도 바다에서는 전선 비슷한 것도 없었다. 오로지 아군의 해군 함정이 활동하는 바다가 있을 뿐이었다.

 6ㆍ25전쟁 초반 일부 북한 어뢰정은 동해에서 미국 순양함과 구축함을 상대로 의미없는 도발을 벌이다 아군에 전멸을 당했다. 비정규전 요원을 태운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무장수송선이 겁도 없이 부산 앞바다까지 침투하다 한국 해군 백두산함 (PC -701)에 격침당한 대한해협해전 정도만 기억에 남는 장면일 뿐 그 이후 북한 해군 수상함정들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전투 주체가 아니었다.

 한국 해군과 미 해군을 바다에서 위협하는 유일한 존재는 적의 기뢰(Naval Mine)였다. 바다에 잠복해 있다 군함이 나타나면 폭발하는 기뢰는 제해권을 상실한 북한군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제해권을 상실한 북한군이 해안 여기저기에 기뢰를 뿌려대는 통에 아군은 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 기뢰의 속성

 아군 입장에서는 ‘가장 혐오스럽고도 피곤한 무기’가 바로 적의 기뢰였다. 다시 말해 실제 피해 못지 않게 정신적으로도 아군을 힘들게 하는 것이 기뢰라는 무기가 가진 본질적 속성이었다. 기뢰는 침묵의 도살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곤혹스러운 점은 기뢰로 공격하는 쪽에서는 너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데 비해, 기뢰를 제거해야 하는 쪽은 그 과정이 너무도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사실이다. 기뢰를 부설하는 전문군함인 기뢰부설함이 있으면 좋지만, 그런 배가 없다 해도 설치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바다로 나가 물속에 기뢰를 떨어트릴 수 있는 배라면 어선은 물론이고 땟목이라고 해도 기뢰를 설치할 수 있었다. 북한 해군도 소형 어선을 활용해 기뢰를 설치하는 극히 초보적인 방법을 쓴 사례가 많다. 심지어 드럼통과 통나무를 이용해 바다와 연결된 하천에 기뢰를 떠내려 보내기도 했다.

 이런 원시적인 방법을 쓴다 해도 어떻든 작동 준비가 된 기뢰는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 해군을 충분히 괴롭힐 수 있었다. 해상에서 전투가 가능한 모든 군함을 상실하고, 바다에 대한 통제권도 완전히 잃은 북한 해군이 마지막으로 매달릴 수 있는 것은 기뢰밖에 없었다.

 ◆ 1950년 9월 첫 피해

 전통적으로 러시아 -구소련은 기뢰를 무척이나 선호한 국가 중 하나였다. 구 소련 해군 관계자들은 이미 인천상륙작전이 있기 전부터 북한에 기뢰전을 권고했다. 북한 동해 원산과 흥남항 외곽에 기뢰를 부설하기에 적합한 저수심 지역이 넓게 발달해 있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는 동해에 비해 기뢰 부설이 대체로 어려웠지만 지형에 따라 기뢰를 부설할 만한 적당한 장소가 없진 않았다.

 아군이 적이 설치한 기뢰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50년 9월 4일, 인천상륙전을 열흘여를 앞둔 시점이었다. 북한 진남포 앞바다에서 적의 기뢰를 처음 발견한 이후, 확인된 기뢰 수효는 점점 늘어났다. 인천상륙전을 이틀 앞둔 9월 13일에는 인천 앞바다 협수로에서도 북한 기뢰가 발견됐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그때까지 북한이 설치한 기뢰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 덕에 인천상륙전도 적의 기뢰 때문에 지장을 받지 않았다.

 북한 해군의 기뢰에 미 해군이 피해를 입은 첫 사례는 1950년 9월 26일 단천 앞바다에서 발생했다. 미 해군 구축함 브러시함(USS DD-745 Brush)은 북한 기뢰의 폭발로 9명의 승조원이 전사하고, 10명이 부상했다. 기뢰의 폭발 충격으로 함수는 물론이고 기관실 중 하나가 날아가고, 함장실도 파손됐다. 함교의 조타장치가 고장나고 화재까지 일어나 최종적으로 전사자는 13명, 중상자는 34명으로 늘어났다.

 4일 뒤인 30일에는 구축함 맨스필드(USS DD-728 Mansfield)가 기뢰에 접촉해 5명이 실종되고 48명이 부상했다. 그 다음날인 10월 1일에는 목포항으로 가던 한국 해군 YMS-504정의 우현 프로펠러에 계류 기뢰의 기뢰줄이 감기면서 2발의 기뢰가 폭발했다. 엔진이 파괴되고 선체가 손상될 정도였지만 천만다행으로 몇 명의 부상자 외에 피해는 없었다.

 인근을 항해하던 미 해군 군함은 폭발음에 놀라 YMS-504정을 호출하면서 “뭐든 돕겠다”고 제안했다. 한국 해군 YMS-504정의 한 장교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씩씩한 목소리로 “우리는 공산당들을 쳐부수기 위해 바로 준비가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훗날 6ㆍ25전쟁이 끝난 지 10년 뒤 이만희 감독이 만들었던 전쟁영화 ‘YMS-504의 수병’의 무대이자 소재가 바로 이 YMS-504정이었다.

 ◆ 원산기뢰전

 북한의 기뢰가 아군의 작전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첫 사례는 1950년 10월의 원산상륙전이었다. 인천상륙 성공 후 맥아더 원수는 새로운 상륙전을 구상했다. 미 8군은 지상에서 진격하고, 미 10군단은 원산에서 새로운 상륙전을 벌인다는 것이 기본 구상이었다. 상륙 목표시점은 10월 15일이었지만, 엄청난 수량의 기뢰가 문제였다.

 미군은 한국 해군과 함께 대대적인 소해작전을 전개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해 전력을 감축한 터라 단기간에 기뢰를 제거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미국은 심지어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전폭기들을 이용해 1000파운드 폭탄을 해상에 투하하는 방법 등 변칙적 수단까지 동원해 소해 시간을 단축하려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항공폭탄은 기뢰로부터 최소한 30피트(9.14m) 이내에서 폭발해야 완벽하게 기뢰를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사일이 개발되기 전의 항공폭탄은 그 정도의 정밀성이 없었다.

 원산 앞바다에는 대략 2000~4000개의 북한 기뢰가 깔려 있었다. 그 중 대부분은 직접 선체와 충돌해야 폭발하는 접촉식 기뢰였지만 , 최소한 50~100개 정도는 군함의 자성에 연동해 폭발하는 자기(磁氣) 기뢰였다. 원래 미 해군이 예상했던 소해 기간은 5일이었지만, 실제로 원산 앞바다에서 아군 함정이 통과할 정도로 적 기뢰를 제거한 시점은 목표 시점보다 보름이나 더 지난 10월 25일이었다.

 지연된 소해작전 때문에 미 10군단 병력이 상륙작전을 감행하지 못하고 배 안에 갖힌 채 동해 바다를 떠돌 동안 국군 1군단은 그보다 1주일 앞선 10월 17일 육상진격을 통해 이미 원산은 물론이고 함흥과 흥남까지 점령을 완료했다. 현대 해상작전에서 소해작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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