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패하였는가?⑤ 베트남 전쟁 / 국방일보 2012.08.06
북 남베트남 분열시키기 위해 간첩망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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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베트남의 국력 비교 |
베트남 전쟁 대부분의 과정에서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비해 경제ㆍ군사적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특히 미군이 철수하면서 많은 양의 무기와 장비를 남베트남에 양도해 남베트남군의 전력은 외형적으로 세계 4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남베트남은 패망했다. 티우 대통령은 허겁지겁 도피했고 100만 명 이상의 보트피플이 발생했으며, 이들 중 많은 사람이 해상을 떠돌다 죽어갔다. 남베트남은 왜 패망했는가?
▶국가 지도부와 군의 부패, 무능
남베트남은 정통성 없는 정권, 매관매직, 특혜, 농민 억압, 외세에 대한 절대적 의존이 모두 존재하는 부패와 무능의 총체적 집합체와 같았다. 대부분의 국가 지도자들은 국가의 안위보다는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응오 딘 지엠ㆍ티우 등 국가 지도자들은 독재와 부정부패를 자행하고 국가안위는 등한시했다. 심지어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군부 지도자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수시로 쿠데타를 감행했다. 군은 1963년 11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지엠 정권을 축출한 후 정치권력에 맛을 들여 북베트남과의 전쟁 와중에도 10여 차례에 걸쳐 쿠데타를 감행했다.
남베트남군은 매관매직으로 주요 보직자를 결정했고 교육훈련에는 소홀했다. 고위층 자녀들은 유학을 빌미로 외국에 거주하면서 병역을 회피했으며, 부유층 자녀들은 뇌물로 장기 휴가를 얻어 사이공에 머물렀다. 군부의 장성이나 고위층이 운영하는 기업체에서 직원이나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병사의 수가 약 10만 명에 육박했다. 심지어 미군이 공여해 준 무기와 물자를 베트콩에게 팔거나 그대로 넘겨주는 경우도 많았다. 적에게 넘어간 무기는 그대로 남베트남군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왔다.
▶국민의 사상적 무장해제
남베트남인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위와 저항을 지속해 사회를 혼란케 하고 국론을 분열시켰다. 학생들은 징병을 회피하고, 언론인들은 이적행위 금지법을 반대하고, 종교인들은 반전시위를 선동하고, 지식인들은 미국 등 서구 제국주의자들과 단절하라는 시위를 지속했다. 결국 북베트남의 의도대로 사상적으로 무장해제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내부의 적, 베트콩의 통일전선전술과 사회적 혼란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분열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간첩망을 운용했다. 1960년에는 남베트남 내에 민족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ㆍNLF)이 결성됐다. 이 조직은 공산주의자들이 주동하고 지엠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했다. 아울러 민족해방전선의 군사조직인 베트콩(VC)이 남베트남 정부 전복 활동을 전개했다. 대통령 비서실을 비롯한 정부기관, 언론사, 각종 사회단체에 침투해 남베트남의 고급 정보를 북베트남에 보고했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는 북베트남의 지령을 받는 거물 간첩 쭝 딘 쥬가 출마해 2위를 차지했다. 1969년에는 남베트남 공군 트롱 중위가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북베트남에 귀순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녹타오 성장과 창반만 경찰장관 등이 북베트남의 간첩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CIA의 통계에 의하면 당시 남베트남 내에 3만 명의 북베트남 공작원들이 활약하고 있었다고 한다.
수차례의 군사 쿠데타로 인한 공안기관 지휘부의 잦은 교체와 좌익세력의 공안기관 내 침투로 다수의 대공 전문가가 퇴출되면서 대공능력을 상실했다. 또한 군 간부층에 침투한 간첩 및 좌익세력들이 장병들을 의식화해 대적관을 희석시키고, 군사작전 기밀을 언론과 북베트남군에 누설해 전투수행 능력과 의지를 약화시켰다. 심지어 남베트남군 총사령부의 극비 보고 내용을 단 하루 만에 베트콩 혁명정부가 입수한 경우도 있었다.
▶부적절한 전쟁 전략
남베트남군과 미군은 베트남 전쟁의 특성을 잘못 이해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전개한 인민전쟁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단순한 소모전 전략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제한된 북폭으로는 결코 남베트남으로 향하는 인력과 보급물자를 막을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북베트남인들의 전쟁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비해 월등한 국력과 강력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외부의 지원이 중단되자 썩은 고목이 쓰러지듯 패망했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매우 박약했으며, 국가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비통하다. 자기 나라를 자기들의 힘으로 지키겠다는 결의와 힘이 없는 나라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엄연하고도 냉혹한 현실과 진리를 우리는 보았다. 남이 도와주려니 하고 그만을 믿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가 망국의 비애를 겪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 눈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