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추적·충돌 위험 동반하는 어려운 임무 美 함장들 경쟁…蘇 원잠 수중정보 획득 한몫
1960∼70년대 소련 잠수함은 소음이 커서 미국 잠수함이 근접해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림은 미국 잠수함이 소련 잠수함의 후방에서 밑으로 접근해 소음을 녹취하고 선체 및 추진기의 사진을 촬영하는 ‘수중관측(Underwater Look)’ 작전을 그래픽한 장면. 필자제공 |
잠수함은 설계 때부터 적용되는 용적률(장비 배치 대 공간 비율)이 60% 정도이기 때문에 배가 커도 승조원의 취침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사진은 장기간 작전시 승조원 취침 공간으로 활용되는 미 오하이오 급 잠수함의 어뢰 저장실. 필자제공 |
▶고급첩보 획득을 위한 미 잠수함 함장들의 경쟁도 볼만
● 데이스함장은 우수정보 수집 당직자에게 위스키를 상품으로 내걸기도
라폰함장 맥과 데이스함장 맥키의 차이점은 무엇보다 매너에 있었다. 모든 사람이 맥키를 더 영웅으로 생각했다. 맥이 해군 조직과 제도권 내에서 무난하게 성장한 반면, 맥키는 초급장교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행동해 정상에 우뚝 선 장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어느 한겨울 밤에 재규어 컨버터블 안에서 현재의 아내인 앤(Betty Ann)을 만나 13일 후에 프러포즈해 결혼했다. 데이스함에서도 그는 초급장교들에게 적극적인 동기부여를 위해 상품으로 Dewar’s 스카치와 Jack Daniels 위스키를 제시함으로써 최대한 경계심을 갖고 당직근무에 임하도록 했으며, 이러한 상품은 신형 소련 잠수함 정보를 수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또 그는 달변의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제독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즉, 그가 수행했던 놀라운 이야기에 매료돼 잠수함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제독들은 그가 감수했던 각종 위험에 대해 어떠한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 소련 잠수함 선저 아래로 들어가 소음 녹취는 물론 선체·추진기 사진 촬영도
맥키 외에도 맥에게는 대서양 함대 내에 또 다른 경쟁자가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켈른(Alfred L. Kelln)과 쉐퍼(H. B. Shaffer)였다. 레이(USS Ray, SSN -653)함의 켈른은 양키급 잠수함을 촬영한 최초의 함장이었으며, 쉐퍼는 맥이 촬영하기 몇 달 전에 찰리 및 양키급 잠수함 바로 밑으로 항해를 했던 그린링(USS Greenling, SSN-614)함의 함장이었다.
쉐퍼는 이들 잠수함이 수중에서 발생시키는 소음 준위와 고유 소음 특성을 녹음했을 뿐만 아니라 잠망경에 내장된 신형 광증폭 광학카메라를 이용해 선체와 추진기를 촬영했다. 당시 그린링함은 양키급 잠수함 선저 밑에 매우 근접해 기동했기 때문에 만약 그때 양키급 잠수함 승조원들이 측심기를 작동해 하부 수심을 측정했더라면, 그곳의 하부 수심이 7m도 안 되는 해저로 착각해 긴급 부상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 선체 직 하방으로 접근해 동조 기동하는 ‘수중관측(Underwater Look)’ 작전은 위험도가 가장 높아 함장은 등에 식은땀이 솔솔
적 잠수함의 직 하방에 접근해 상대 함의 추진기와 선저를 사진 촬영하고 소음을 녹취하는 ‘수중관측(Underwater Look)’이라는 임무는 대단히 큰 위험을 동반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소련 잠수함은 그린링함의 상부에서 심도를 변경해 깊이 내려갈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충돌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임무수행 후 매우 큰 표창을 받았다. 이런 작전을 하려면 통상 표적함보다 2~3배의 속력을 낼 수 있어야 하므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에 적합하다. 미국은 최초로 양키급 잠수함의 음향 특성을 획득했고, 그린링함의 테이프에 기록된 수중 소음 정보들은 곧바로 미국이 세계 곳곳 주요 잠수함 길목에 설치한 수중음향감시(SOSUS) 장비의 컴퓨터에 입력됐다.
그러나 그린링함이 수집해 온 수중소음 정보가 어선, 해양생물 및 조류의 소음들로 가득 찬 대양에서 항해하고 있는 양키급 잠수함의 소음을 구별해낼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것인가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다. 결국, 양키급 소음은 장기간 여러 번에 걸쳐 획득해야만 했다.
▶수개월간의 정보수집 임무, 함장은 승조원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많은 이벤트를 만들어야
맥과 다른 함장들은 번갈아 가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 영해를 벗어나 바렌츠 해와 양키급 잠수함의 모항을 향해 북위 50도 이상의 해역으로 장거리 항해를 했다. 1969년 9월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맥에게 기회가 왔다. 라폰함은 장기 임무수행을 위해 산더미같이 많은 양의 달걀과 고기, 버그주스(bug juice)로 알려진 시럽과 같은 음료수를 적재하고 대서양에 위치한 노폭항을 출항했다. 이번에는 맥의 식성을 고려해 다른 때와 달리 3개월분의 얼린 블루베리를 적재했다. 그는 블루베리와 블루베리 머핀에 대한 물릴 줄 모르는 식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수시로 블루베리 피자 파티와 슬롯머신 등으로 장기간 항해로 인한 승조원들의 권태를 날려 보내려 노력했다.
● 당시 원자력 잠수함 승조원은 공동침대가 아닌 개인침대를 배정
라폰함에는 원래 슬롯머신을 설치할 만한 공간이 없었으나, 어렵게 만들어 슬롯머신을 설치하고 출항했다.
라폰함이 비좁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승조원에게 공동으로 사용하는 hot-bunker가 아닌 자신만의 침대가 주어져 있었다. 이러한 침대들은 선반을 겹쳐 놓은 형태로 설치됐기 때문에 위아래 침대 사이의 공간은 한 사람이 들어가 누웠을 때 거의 닿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별 침대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어뢰실의 빈 공간에도 매트리스를 깔아 침대를 마련해야 했다. 이러한 좁고 불편한 잠자리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은 커튼으로 침대를 가려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각 침대에는 서랍이 하나씩 달렸었는데 승조원들은 이 서랍 속에 3개월간 임무수행에 필요한 내의와 잠수함복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넣어 뒀다.
● 승조원들은 장기작전 중 한 번 정도 받아 보는 서너 줄의 가족 전보에 위안
디젤 잠수함에서는 디젤 기름으로부터 나오는 악취와 혼탁한 함 내 공기의 축적으로 인해 폐결핵에 걸리기도 했는데 라폰함은 디젤 기름의 악취와 원자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제거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이처럼 라폰함은 최신형 공기정화 장치가 설치돼 함 내 공기를 정화하므로 누구나가 안락하다고 명백히 말할 수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담배연기가 함 내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하수구와 같은 곳에서의 생활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승조원들은 잠망경 영상과 가족의 소식을 전해 주는 전보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이것들만이 바깥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가족 소식란은 전보의 주요 내용이 아니었다. 따라서 부수적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포함될 수 있는 양도 상당히 제한됐다. 즉, 모든 승조원이 사랑하는 아내 또는 부모로부터 소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보통 임무수행 기간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약 서너 줄 정도의 소식만을 전할 수 있었다.
● 당직근무 시간 이외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승조원의 지혜
다음으로 승조원들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승조원들은 6시간 동안 당직근무를 했다. 당직 이후에는 주로 정비와 끝없는 행정업무, 그리고 승조 자격부여 평가 등으로 약 12시간 동안 일과를 진행해야 했다.이러한 생활이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여기에서 승조 자격부여 평가는 새로 잠수함 승조원으로 부임한 대원들에게 해당됐다. 이들은 잠수함에 설치된 모든 장비 및 계통에 대해 이해해야 했으며, 또한 운용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평가받아야 했다.
이러한 평가에서 합격하지 못하면 그 어느 누구도 공식적인 잠수함 승조원이 될 수 없었으며, 정식 잠수함 승조원 표시인 돌핀 마크를 부착할 수 없었다.
<다음 회에 계속>
잠수함 퀴즈
호주 해군이 6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1982년부터 20년에 걸쳐 독자 개발한 잠수함은 무슨 급인가?
※ 지난주 정답 : 킬로급 잠수함
기사사진과 설명
문근식 (주)솔트웍스 부사장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 mksnavy@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