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의 전략은 공세적이고 파괴적이며 가공할 핵무기 위력을 등에 업은 결사대가 보복공격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미 수십 년간 계속된 이스라엘의 방위전쟁에서 이러한 전략이 입증됐다. 따라서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전통적으로 저격술에 큰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공격적이고 집중적인 전투력 운용과 책략 중심의 빠른 속도전이 특징인 이스라엘의 전쟁 철학에서 정적인 스나이퍼가 존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1983년 IDF군이 최초로 지상 방어전에 투입됐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후에 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숙적인 팔레스타인 해방군(PLO)은 레바논을 저항 기지로 삼아 몇 년 동안 200회 이상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특공대로 자처하는 게릴라 부대를 침투시켜 기브츠·영화관·버스까지 습격하는가 하면, 정부 관리나 군 장교에 대한 저격과 공공기관에 폭탄테러 및 방화를 자행했다. 동시에 국경지대에서 야포와 로켓 공격도 감행했다.
이에 이스라엘군은 공군기를 출격시켜 레바논 내의 PLO기지를 폭격했지만 성과가 미미하자 본격적으로 지상부대를 투입, 보복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러한 레바논 침공의 직접적인 명분은 PLO 게릴라가 주영 이스라엘 대사를 저격한 사건이었다.1983년 6월 6일, 이스라엘군은 신형 전차 메르카바 300대를 주력으로 앞세우고 공격부대가 레바논 국경을 너머 북쪽으로 진격했다.
미군의 화력지원과 이스라엘 공군의 정확한 지상폭격으로 PLO 기지는 초토화됐고 그들의 SAM 대공미사일 체계도 무력화시켰다. 이스라엘군에서 스나이퍼는 분대나 소대 규모의 말단 보병부대에 편성됐는데 그들의 임무는 통상 돌격용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부대의 화력을 증원하는 것이다. 레바논 국경지대의 방어진지는 이스라엘 스나이퍼들의 연습사격장에 불과할 뿐, 게릴라들은 AK-47 자동소총과 RPG 로켓포를 장비하고 필사적으로 반격했으나 처음부터 승패는 분명했다.
대부분 유럽 군대의 저격수들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저격수는 노리쇠 작동식 저격 소총을 선택하지 않고, 소련제 AK-47총을 기초로 발전한 갈릴(Galil) 반자동 돌격소총을 저격 무기로 개조했다. 갈릴 저격용 소총의 도입 전까지 이스라엘의 스나이퍼는 미국의 잉여품인 M14총과 민간 사냥용으로 제작된 소총을 저격용으로 대신 사용했다.
갈릴 저격용 소총은 5.56mm 돌격용 소총 스타일보다 더 크고 무거운 7.62mm 구경과 NATO 탄약으로 재무장했고, 견고한 총 몸통과 함께 25발의 탄알집·거치대, 그리고 님로드(Nimrod) 망원 조준경이 장착됐다. 이 총의 특징은 아음속탄을 사용할 수 있고 접철식 개머리판 구조와 양각대에 철조망 절단 기능을 갖고 있는데 이는 돌격용 버전에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스나이퍼들은 레바논의 PLO 기지 주변에 설치된 철조망을 쉽게 돌파하고 기습공격을 가했다. 갈릴은 노리쇠 작동식 소총보다 정확성에서는 떨어지지만 전투시 대량 사격을 할 수 있었다. 탄환의 양이 이스라엘의 저격전에서는 더욱 중요한 요소였다. 레바논으로 전격 진출하는 이스라엘군의 강력한 돌파력과 미 제6함대의 막강한 화력지원으로 아랍 게릴라들의 전투력은 여지없이 붕괴됐다.
베이루트의 고층건물이 미군의 폭격으로 붕괴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들이 발생했다. 이스라엘군과 PLO 및 아랍국가 간의 치열한 전쟁은 막다른 상태로 치달았다. 쌍방 모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마지막 교전에서 이스라엘군은 스나이퍼를 전장에 투입해 아랍군 병사들을 사살했다. 이스라엘군 스나이퍼 크라머(Chuck Kramer)는 베이루트에서 PLO 게릴라를 사살한 극적인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훌륭한 사격은 대부분 아주 먼 거리에서 이뤄졌고 명중은 600~800m의 거리에서 나왔다. 나는 운 좋게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두 명을 한 발로 명중시켰다.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게릴라가 약 1km 떨어진 곳에서 다가올 때, 나는 조준경의 십자선을 맞추고 직감적으로 한 발을 쏘았다. ‘탕-!’매우 고전적인 사격이었다. 오토바이가 전복되며 사람들이 길 위로 내팽개쳐졌다. 탄환은 틀림없이 운전자를 관통한 다음 뒤에 탄 동승자까지 명중한 것 같았다.”
베이루트의 시가전에서 PLO와 다른 아랍 게릴라들도 필사적인 저격전으로 이스라엘군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군은 게릴라의 저항을 분쇄하고 PLO저격 진지를 파괴하기 위해 항공폭격과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시가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러한 참담한 모습들이 아랍 테러리스트들에게 각인됐고, 후일 오사마 빈 라덴의 저주를 받는 원인이 됐다.
<양대규 전사연구가> 국방일보 2008.12.16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1983년 IDF군이 최초로 지상 방어전에 투입됐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후에 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숙적인 팔레스타인 해방군(PLO)은 레바논을 저항 기지로 삼아 몇 년 동안 200회 이상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특공대로 자처하는 게릴라 부대를 침투시켜 기브츠·영화관·버스까지 습격하는가 하면, 정부 관리나 군 장교에 대한 저격과 공공기관에 폭탄테러 및 방화를 자행했다. 동시에 국경지대에서 야포와 로켓 공격도 감행했다.
이에 이스라엘군은 공군기를 출격시켜 레바논 내의 PLO기지를 폭격했지만 성과가 미미하자 본격적으로 지상부대를 투입, 보복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러한 레바논 침공의 직접적인 명분은 PLO 게릴라가 주영 이스라엘 대사를 저격한 사건이었다.1983년 6월 6일, 이스라엘군은 신형 전차 메르카바 300대를 주력으로 앞세우고 공격부대가 레바논 국경을 너머 북쪽으로 진격했다.
미군의 화력지원과 이스라엘 공군의 정확한 지상폭격으로 PLO 기지는 초토화됐고 그들의 SAM 대공미사일 체계도 무력화시켰다. 이스라엘군에서 스나이퍼는 분대나 소대 규모의 말단 보병부대에 편성됐는데 그들의 임무는 통상 돌격용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부대의 화력을 증원하는 것이다. 레바논 국경지대의 방어진지는 이스라엘 스나이퍼들의 연습사격장에 불과할 뿐, 게릴라들은 AK-47 자동소총과 RPG 로켓포를 장비하고 필사적으로 반격했으나 처음부터 승패는 분명했다.
대부분 유럽 군대의 저격수들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저격수는 노리쇠 작동식 저격 소총을 선택하지 않고, 소련제 AK-47총을 기초로 발전한 갈릴(Galil) 반자동 돌격소총을 저격 무기로 개조했다. 갈릴 저격용 소총의 도입 전까지 이스라엘의 스나이퍼는 미국의 잉여품인 M14총과 민간 사냥용으로 제작된 소총을 저격용으로 대신 사용했다.
갈릴 저격용 소총은 5.56mm 돌격용 소총 스타일보다 더 크고 무거운 7.62mm 구경과 NATO 탄약으로 재무장했고, 견고한 총 몸통과 함께 25발의 탄알집·거치대, 그리고 님로드(Nimrod) 망원 조준경이 장착됐다. 이 총의 특징은 아음속탄을 사용할 수 있고 접철식 개머리판 구조와 양각대에 철조망 절단 기능을 갖고 있는데 이는 돌격용 버전에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스나이퍼들은 레바논의 PLO 기지 주변에 설치된 철조망을 쉽게 돌파하고 기습공격을 가했다. 갈릴은 노리쇠 작동식 소총보다 정확성에서는 떨어지지만 전투시 대량 사격을 할 수 있었다. 탄환의 양이 이스라엘의 저격전에서는 더욱 중요한 요소였다. 레바논으로 전격 진출하는 이스라엘군의 강력한 돌파력과 미 제6함대의 막강한 화력지원으로 아랍 게릴라들의 전투력은 여지없이 붕괴됐다.
베이루트의 고층건물이 미군의 폭격으로 붕괴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들이 발생했다. 이스라엘군과 PLO 및 아랍국가 간의 치열한 전쟁은 막다른 상태로 치달았다. 쌍방 모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마지막 교전에서 이스라엘군은 스나이퍼를 전장에 투입해 아랍군 병사들을 사살했다. 이스라엘군 스나이퍼 크라머(Chuck Kramer)는 베이루트에서 PLO 게릴라를 사살한 극적인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훌륭한 사격은 대부분 아주 먼 거리에서 이뤄졌고 명중은 600~800m의 거리에서 나왔다. 나는 운 좋게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두 명을 한 발로 명중시켰다.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게릴라가 약 1km 떨어진 곳에서 다가올 때, 나는 조준경의 십자선을 맞추고 직감적으로 한 발을 쏘았다. ‘탕-!’매우 고전적인 사격이었다. 오토바이가 전복되며 사람들이 길 위로 내팽개쳐졌다. 탄환은 틀림없이 운전자를 관통한 다음 뒤에 탄 동승자까지 명중한 것 같았다.”
베이루트의 시가전에서 PLO와 다른 아랍 게릴라들도 필사적인 저격전으로 이스라엘군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군은 게릴라의 저항을 분쇄하고 PLO저격 진지를 파괴하기 위해 항공폭격과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시가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러한 참담한 모습들이 아랍 테러리스트들에게 각인됐고, 후일 오사마 빈 라덴의 저주를 받는 원인이 됐다.
<양대규 전사연구가> 국방일보 2008.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