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륜혁 해병대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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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태권도 도복 사이로 보이는 검정색 피부와 무표정한 얼굴, 질서 없는 모습, 이것이 태권도 교실 학생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아이티에 희망을 주고 돌아가겠다는 사명감으로 파병 왔지만 그들과 직접 마주한 순간 많은 고민이 생겼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우선 시급한 것은 목적의식이 없는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먼저, 개인 수준을 파악해 맞춤식 교육으로 목표를 체계적으로 세우고 성과를 달성함으로써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고자 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흥미를 갖도록 태권도 기본동작·응용동작·격파·겨루기 숙달과 다양한 야외시범준비를 병행했다.
6명의 태권도 조교들은 주 3회, 하루 3시간씩 최선을 다해 태권도를 가르쳤고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의 마음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한 달이 지나자 조교를 태운 부대 버스만 보이면 먼저 뛰어와 반갑게 맞아 줬고, 청소와 주변정리는 물론 수업이 끝나고 나머지 학습을 하는 학생도 생겼다.
학생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지난 5월 교관과 아이티 태권도 교실 학생이 함께 어우러져 4000여 명의 그레시아 마을 주민과 학생들 앞에서 태권도 품세와 태권무, 격파시범을 선보이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은 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또 유엔 메달 퍼레이드에서는 많은 유엔군과 유엔 및 아이티 정부 관계자에게 선보였던 태권도 시범은 대한민국과 태권도의 매력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그들은 만날 때면 ‘코레아, 태권도’라는 말을 하며 반가워한다.
‘땀(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티 태권도 협회와 MOU를 체결하고 승단심사를 치렀던 그날의 감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승단시험을 앞둔 10명의 학생이 3시간 동안 평가 항목별로 최선을 다했고 평가가 끝나자 녹색 매트와 태권도 도복, 또 그들의 눈은 땀과 눈물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10명 모두의 허리에는 검정색 띠가 매어졌다.
4개월이 지난 지금, 도복 사이로 보이는 까만 얼굴에는 새하얀 이를 보이는 밝은 미소와 꿈으로 부푼 맑은 눈망울이 초롱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곳에서 아이티 태권도 국가대표가 배출되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꿈과 희망이 결실을 맺게 되길 기대한다. <국방일보 2012.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