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흠 하사 해병대교육훈련단
학창 시절 교정에는 베트남전쟁 ‘해풍작전’ 중 적의 수류탄을 자기 몸으로 덮어 부하들을 구하고 전사하신 해병대 청룡부대의 고(故) 이인호 소령 동상이 있었다. 그렇게 막연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고 있던 차에 선생님을 찾아와 절도 있게 경례를 올리는 ‘빨간 명찰’의 해병들을 보고 해병대에 반해 버렸다. 멋진 해병이 되고자 신병 1262기로 입영했는데, 건강이 발목을 잡아 아쉬움을 머금고 중도 퇴소했다. 병역의 의무는 다해야 했기에 육군 용사로 입대해 논산훈련소 조교로 성실히 복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 대학생활을 했지만, 이루지 못한 ‘해병대’를 향한 미련은 커져만 갔다. 조교로 복무하면서 부대 전투력을 책임지는 부사관에 대한 열망까지 더해졌다. 깊은 고민 끝에 해병대 부사관으로 재입대를 결심해 해병대 부사관 406기로 합격했다.
“남들은 한 번도 안 가려는 군대를 제 발로 두 번이나 가?”라며 황당해하시는 부모님과 손자 걱정에 눈물만 훔치시는 할머니에게 안부를 전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북 포항 해병대교육훈련단(교훈단)을 찾았다.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교훈단은 익숙하면서도 설?다. ‘이번만큼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신병훈련과는 달리 11주라는 기간이 길게만 느껴졌지만, 소대장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동기들과 서로 배우고 알려 주며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갔다.
육군 조교 임무를 수행하며 기초군사훈련을 많이 해 봤지만, 해병대 부사관 양성과정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군인화 교육에서는 훨씬 강도 높은 체력이 요구됐고, 정확한 기술·자세가 필요했다. 간부화 교육에선 부하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갈 수 있는 전술적 지식과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학습해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극기주 ‘천자봉고지정복훈련’과 ‘빨간 명찰 수여식’이었다. 각개전투, 침투훈련 등 육체적 훈련을 반복하며 진이 다 빠진 채 오로지 자신을 믿고 동기를 의지하며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교육훈련단장님을 비롯한 간부들의 환영을 받으며 교훈단 정문을 통과했던 기억, 신병훈련에서 실패했던 빨간 명찰을 소대장님께서 가슴에 달아 주실 때의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다. 해병대 탄생과 함께 시작된 이 통과의례는 동기애를 극대화하고 조직을 향한 충성·자긍심을 이끌어 내는 최고의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해병대 부사관 406기는 ‘해병대’의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돌이켜 보면 해병대 부사관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수많은 전장에서 해병대 전승의 역사를 이끈 주인공이었다. 지휘관의 명령에 충성을 다하고 부하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포연탄우를 뚫고 승리를 만들어 낸 해병대 부사관의 역사와 전통을 동기들과 함께 멋지게 이어가고 싶다.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고 헌신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국가를 수호하는 자랑스러운 406기가 됐으면 좋겠다. <국방일보 병양의창 2024. 08. 14>